전체 글 4

물거품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기다란 창이 내 명치를 찌르는 꿈을 자주 꿨다. 어쩌면 내 상상이었을 수도. 어쨌든 말하기도 힘들 수준이 되자 병원에서는 물거품 증후군 이라고 했다. 점점 목이 따끔 거리다가 물 속에 잠겨 있는 듯한 상태가 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다가 그상태로 세 달이 지속되면 사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료 방법은 없나요. 아빠는 충격을 받은 채로 더듬으며 겨우 물었다. 진정한 사랑을 찾으면 됩니다. 이게 웹소설에 빙의한 것도 아니고 대체 뭔소린가 싶은 표정으로 의사를 쳐다봤다. 사랑을 하면 세르토닌과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가 되는데 이 신경전달물질이 뇌에 자극을 줘서 ... 어쩌고 저쩌고. 결국에는 사랑을 해야 이 증상이 사라지고 내 목소리가 나오고, 나는 목숨을 잃지 않고. 인어공주 동..

산문 2022.10.25

금성의 밤

지구에서 편지가 도착했다. 121일인 밤동안 무얼하며 지내냐고. 금성의 자전주기는 약 243일이라 지구의 시간 기준으로는 금성의 하루의 평균치는 243.0226±0.0013일이 된다. 낮과 밤이 각각 121일 하고도 12시간인 것이다. 친구가 자기가 금성에 있다면 잠을 밤에 전부 몰아서 잘 것이라고 했다. 네 달간 자고 네 달간 움직이고. 하루가 243일이라는 걸 곰곰히 떠올려보면 막연해서 오히려 두려울지도 모른다고. 우선 생각보다 121일 동안 어두컴컴한 밤이더라도 우리의 할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금성의 대기를 관측하고, 오늘의 위치 좌표는 어디인지, 우주선 정비와 남은 음식들 점검, 보고, 그리고 편지 읽기. 그러나 나는 금성에서 딱 사흘을 지내는 것인데도 지구로 돌아가면 순식간의 시간이 흘러있을..

산문 2022.10.24

트위터에 ”자살”만 쳤는데도 자동완성으로 “자살하실”이 나왔다. 턱을 괸 채로 스크로를 내려봤으나 다들 2021년, 2020년에 쓴 것들 뿐이다. 밑에 구하셨나요? 라는 멘션만 주루룩 달려있었다. 비교적 최근 멘션을 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아직 안가셨으면 까지 적다가 죽는 날까지 외롭지 않고 싶다는 게 웃겨 관둬버렸다. 오늘은 오랜만에 우울하지 않은 날이었다. 싸구려 알코올을 왕창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아팠다. 거리는 묘한 흥분감과 열기로 가득했고, 붉은 색 노란 색 파란 색으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는 영수증이 있었다. 24000원, 1인분의 외로움을 해소하기에는 저렴한 값이다. 내던져진 영수증은 팔랑거리며 느리게 웅덩이로 안착했다. 그 웅덩이에는 아주 작은 달이 보였는데, 처음..

산문 2022.10.21

담배

엄마의 손 끝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담뱃재와 눈이 마주쳤다. 25년 살면서 엄마가 담배를 핀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외할아버지가 지독한 골초이셨고 그로 인해 폐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또한 아빠도 극심한 담배 혐오자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흡연이라는 걸 꿈 꿀 수 없는 환경이었다. 아빠는 길에서 담배피는 여자를 보면 천박하다고 읊조리곤 했다. 오빠의 가방에서 담배를 발견했을 때 오빠는 골프채로 딱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오빠는 담배를 끊었다고 했으나 사실 전자담배로 틀었다는 걸 나와 엄마는 알고 있었다. 아무튼 담배의 ㄷ자만 나와도 흉흉해지는 탓에 나도 흡연자라는 걸 숨기고 있었다. 나름 나만의 흡연 철칙이 있었다. 첫번째, 집 근처에서 피우지 말 것. 두번째, 담배를 핀 후 손을 씻고..

산문 2022.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