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물거품

완자완자 2022. 10. 25. 01:24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기다란 창이 내 명치를 찌르는 꿈을 자주 꿨다. 어쩌면 내 상상이었을 수도. 어쨌든 말하기도 힘들 수준이 되자 병원에서는 물거품 증후군 이라고 했다. 점점 목이 따끔 거리다가 물 속에 잠겨 있는 듯한 상태가 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다가 그상태로 세 달이 지속되면 사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료 방법은 없나요. 아빠는 충격을 받은 채로 더듬으며 겨우 물었다.

진정한 사랑을 찾으면 됩니다.

이게 웹소설에 빙의한 것도 아니고 대체 뭔소린가 싶은 표정으로 의사를 쳐다봤다. 사랑을 하면 세르토닌과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가 되는데 이 신경전달물질이 뇌에 자극을 줘서 ... 어쩌고 저쩌고. 결국에는 사랑을 해야 이 증상이 사라지고 내 목소리가 나오고, 나는 목숨을 잃지 않고. 인어공주 동화에서 유래된 명칭이고 참으로 로맨틱한 이름같지 않냐며 의사가 하하, 웃으며 말했지만 아빠와 나의 반응이 좋지 않자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쨌든 원씨는 지금 20대이기도 하고, 한창 연애 많이 할 시기 잖아요? 노력하면 될 겁니다.

당장 목이 아파서 말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뭔 연애. 한숨을 포옥 쉬고 병원을 나오자 아빠는 갑자기 자기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내 또래인 아빠 친구의 아들들을 소개시켜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질색을 하고 그렇게 억지로 만나고 아빠랑 건너건너 아는 사이인데 연애가 되겠다며 소리를 질렀지만, 아빠는 딱 한번만 만나보고 아닌 거 같으면 접으라고 했다. 시도는 해봐야지 억울하지도 않겠냐고. 그건 맞는 말인데, 문제가 있었다.

나는 레즈비언이다.

아빠는 꿈에도 내가 레즈인지도 모르고 자꾸만 아는 사람을 소개 시켜준다고 하고, 아빠 친구의 동생의 친구의 외삼촌의 조카가 아이돌 연습생이었는데 잘생겼지 않냐며 얘는 어떻냐고 호들갑이었다. 아빠, 그 정도면 그냥 모르는 사람인데. 이거를 말해, 말아. 딸이 죽게 생겼으니까 이해해 줄 지도 몰랐다. 아빠 그러면... 혹시 주변에 아는 레즈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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