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담배

완자완자 2022. 10. 21. 00:32

엄마의 손 끝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담뱃재와 눈이 마주쳤다.

25년 살면서 엄마가 담배를 핀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외할아버지가 지독한 골초이셨고 그로 인해 폐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또한 아빠도 극심한 담배 혐오자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흡연이라는 걸 꿈 꿀 수 없는 환경이었다. 아빠는 길에서 담배피는 여자를 보면 천박하다고 읊조리곤 했다. 오빠의 가방에서 담배를 발견했을 때 오빠는 골프채로 딱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오빠는 담배를 끊었다고 했으나 사실 전자담배로 틀었다는 걸 나와 엄마는 알고 있었다.

아무튼 담배의 ㄷ자만 나와도 흉흉해지는 탓에 나도 흡연자라는 걸 숨기고 있었다. 나름 나만의 흡연 철칙이 있었다. 첫번째, 집 근처에서 피우지 말 것. 두번째, 담배를 핀 후 손을 씻고 핸드크림을 바를 것. 마지막, 최소 귀가 2시간 전이 담배를 필 수 있는 데드라인.

그러나 그 날따라 이 흡연 철칙을 어기고 싶었다. 살고 있는 집이 아파트로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옆 동 고양이를 키우는 아줌마가 날 목격하고, 그 목격담이 부모님에게로 흘러갈 것이 뻔했다. 집에서 30분 정도 걷다보면 공장 단지가 나왔다. 오후 6시만 되면 다들 불을 끄고 퇴근 했고, 나는 우울해질 때마다 종종 여기로 산책을 오곤 했다. 헤드라이트도 빼꼼 보일 만큼 한적하며 옆에 강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물이 졸졸 흘렀는데, 여기서 나는 악취가 좋았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있다보면 나에게서 나는 악취를 가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작은 불씨가 하나 더 있었다. 라이터의 작은 불빛으로만으로도 엄마와 나는 서로의 정체를 알아본 것 같았다. 호통을 칠 것이라 예상한 것과 달리 엄마는 분명히 담배를 마저 피우고,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엄마에게서 독한 멘솔 향이 나는 걸로 봐서 람보르기니 아이스 볼트를 피우는 듯했다.

냄새가 지독할 텐데, 왜 몰랐지.

그 일련의 사건 이후 엄마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고, 내가 잘못봤나 싶을 만큼 집에서는 멘솔향조차 나지 않았다. 아빠가 또 출장을 간 날, 나는 일부러 빨리 귀가해 다시 그 길로 향했다. 저번에도 저녁 9시쯤 마주쳤으니 지금도 거기 있을지 모를 터 였다. 예상대로 엄마는 연기를 뿜고 있었고, 잘 보이진 않았지만 발 밑에 담배 꽁초가 여러개 있었다. 엄마는 살짝 놀란 듯 보였으나 내가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켜자 눈길을 돌렸다. 담배를 빨아들이고 있는 동안에도 엄마는 내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기묘했던 3분의 정적이 흐르고, 아스팔트 위에 담배 꽁초를 던지자 그제서야 엄마가 움직였다.

엄마의 작은 등에서는 강에서 나는 악취를 뚫고 담배냄새가 났다. 깜깜한 길거리에서는 독한 멘솔 향만이 부유할 뿐이었다. 집에 가는 30분 내내 엄마는 뒤를 돌아 보지 않았지만, 내 발걸음 소리를 듣고 보폭을 맞춰주는 듯 했다. 삐가리가 도는 건지 엄마가 피웠던 담배가 독해서 였는지 몰라도 눈물이 찔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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